2차 세계대전 당시, 네덜란드의 작은 시계방을 운영하던 평범한 여성 ‘코리 텐 붐’은 유대인들을 숨겨주다 발각되어 가족과 함께 나치 강제수용소에 끌려갑니다. 그곳에서 그녀는 언니 베시와 함께 극심한 고난과 박해, 굶주림, 질병, 그리고 동료 수감자들의 죽음을 매일 목격해야 했습니다.
무엇보다도 끔찍했던 건 잔인한 독일 경비병들의 폭력과 조롱이었습니다. 베시는 결국 수용소에서 죽었고, 코리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전쟁이 끝난 후 석방되었습니다.
전쟁 후, 그녀는 전 세계를 돌며 “용서와 화해”에 대해 간증하기 시작했어요.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, 어떻게 십자가가 고통을 넘어 용서와 사랑의 상징이 되었는지를 간절히 전했죠.
그런데 충격적인 사건이 한 번 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.
1947년, 독일 뮌헨에서의 집회가 끝난 후, 청중 중 한 남자가 다가왔습니다.
"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셨다고 말씀하셨지요. 정말 놀라운 사랑입니다. 저는 수용소에서 경비병으로 일했던 사람이었습니다. 그런데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고… 지금 당신에게도 그 용서를 구합니다."
그는 손을 내밀었습니다. 바로, 코리와 베시를 괴롭히던 바로 그 경비병이었던 것입니다.
코리는 순간 얼어붙었습니다. 머리에는 여전히 수용소에서의 냉기, 언니의 죽음, 그 잔혹했던 날들이 선명했죠. 몸이 떨렸고, 마음은 “절대 용서 못 해!”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.
하지만 그녀는 조용히 속으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해요.
“주님, 저는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. 하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저는 순종하고 싶습니다. 저의 손을 움직여 주세요.”
그러고는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는데, 그 순간 전율이 온몸을 타고 지나갔다고 합니다.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안과 사랑이 그녀의 마음을 덮었고, 그녀는 진심으로 말할 수 있었어요.
“형제여,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. 온 마음으로요.”
그녀는 훗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.
“용서는 감정이 아니라, 결단입니다.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신다면, 나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. 십자가는 바로 그 용서의 시작입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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